<에베소서 2:13~19>
2:13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2: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2: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2:16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2:17 그분은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분에게 평화를 전하셨으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2:18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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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동체는 복음으로 세워집니다>
교회가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는 사실 우리의 신앙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교회, 그리스도와 교회, 복음과 교회를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교회 생활과 신앙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먼저 우리의 개인주의적 성향에서 옵니다. 우리는 신앙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서 누구의 구속이나 간섭도 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자신의 사적 삶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느끼면 움츠러들거나 도망갑니다. 그런데 이런 성향은 인간이 가진 죄성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본래 공동체로 창조되어서 그 안에서 부끄러움이 없었으나, 범죄와 함께 자기를 지키려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발현합니다. 그로 인해 관계가 금이 가고 공동체가 깨어졌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도 이 성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님을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오라고 하십니다. 관계과 공동체를 깨뜨리는 이 개인주의적 죄성을 부인하지 않고는 주님을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 이유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본질적 이유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영적 본질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교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원수지간이었던 우리 사이를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율법이라는 장벽으로 나누어져 있던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드셔서 영적 가족이 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불편한 나그네가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식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에게 다가서는 영적인 사랑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이것을 이해할 수 없을 때, 영적인 교회 공동체가 불편하다고 여겨집니다.
교회는 사교성이 뛰어나거나 적극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주목받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의 은혜를 받은 것,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죄를 사하는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경험한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영적 사랑에 근거하는 공동체입니다. 이처럼 세워지는 교회는 세상이 감할 수가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꾸어주는 공동체!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에게도 주님이 인자하심을 믿고 서로를 대하는 공동체! (누가복음 6:35) 이런 공동체는 강력한 힘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요? 복음이 합니다! 우리 안에 뿌리박힌 거짓 복음을 내버리고 진짜 복음을 믿을 때 우리는 복음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인 교회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그 안에서 능력 있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복음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그 기쁨으로 예배하고, 주님을 더 알아가고, 이웃을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그렇게 세 축이 체화되는 삶을 살아가 보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