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4:8-11)
8 해가 뜨자, 하나님이 찌는 듯이 뜨거운 동풍을 마련하셨다. 햇볕이 요나의 머리 위로 내리쬐니, 그는 기력을 잃고 죽기를 자청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9 하나님이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박 넝쿨이 죽었다고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가 대답하였다. "옳다뿐이겠습니까? 저는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
1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식물을 네가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11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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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2주 전에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서 종착지에 다다른 믿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기꺼이 제물로 드리는 곳이었습니다. 모세의 종착지는 한 번의 실수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조용히 자기의 사명을 마무리하는 자리였습니다. 바울의 종착지는 사탄의 하수인처럼 여겨지던 삶의 어려움을 인한 기도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쁨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다고 응답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들이 말과 행동으로 자기 믿음의 종착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요나는 침묵 속에서 회개함으로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이 동일하게 보여주었던 모습은 이것입니다: 설명을 요구하는 신앙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기에 순종하는 신앙으로 자라는 삶. 그리고 이 믿음의 여정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시간과 함께 한 고난이었습니다. 동일한 믿음의 종착지에 도달한 이들을 우리는 성경 밖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호레이쇼 스패포드, 헬렌 로즈비어, 엘리자벳 엘리엇, 아더 핑크 등등. 우리에게는 세월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순종할 수 있었던, 헤아릴 수 없는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국이 놓여져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이 단숨에 완성에 이르지 않고 인생이라는 긴 여정 안에서 고난의 세월을 통과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죄를 아는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죄성, 내가 내 인생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과도 견줄 수 있다고 여기는 죄의 성향을 가지고 살아가며, “나를 설득시키지 않으면 나는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습니다”라는 태도를 견지하는 모습이 얼마나 무섭고 한 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우리 믿음의 종착역인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기에 순종하는 자리로 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건 아니지.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하시는 건 아니지. 나 힘들어! 내가 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데!”라고 외치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은 그 때 우리 안의 죄를 보라고 하십니다. 자신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경험하게 되는 비참함의 열매를 보라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죄의 결과에서 너를 구원하려고 내가 내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였단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새로운 한 해에는 우리 안에 깊이 감추어진 죄의 성향을 보고 회개하는 자리로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설명을 요구하는 신앙, 뭔가 당당한 자아를 드러내는 신앙에서 변화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변해가는 한 해가 되어가시길 소망합니다. 시간 속에서 주어지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점점 완성에 가까워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