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누리고 나누는, 주님의 소원"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롬 1:16)

조회 수 6741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베드로후서 3:18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3)

  • ?
    석목사 2016.12.30 03:56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예수님 이 땅에 오신지 이미 2천년이 지났건만 세상은 여전히 너무 캄캄하고 어둡게 보입니다. 평강의 왕이 오셨다는데 전혀 평강이 없는 것처럼 보여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과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살펴보니 사망의 그늘진 어둠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모시고 영접하여 한 아기가 그 자리에 임하시니, 밝은 빛으로 변하는 역사가 수없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개개인의 삶 속에 이미 경험되어져 왔던 바로 그 사건이 온 우주적으로 펼쳐지고 완성될 바로 그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을 간절히 기다리며, 그 길을 예비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사명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도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조롱하는 무리가 있는 것처럼, 베드로의 시대에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신지 불과 3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던 그 때부터 이미 예수님 다시오심의 약속을 조롱하는 무리들이 일어났음을 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습을 보면, 연약한 인간에게는 1년의 기다림조차도 영원처럼 느껴지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고 조롱하는 그 조롱에 대해서 베드로후서 3장의 말씀으로 대답해 주면서, 예수님 그분이 누구신지 알 때 -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 때 - 비로소 그 답을 알 수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예수님 누구십니까? 사랑이십니다. 은혜 자체이십니다. 19501224일 흥남부도에서, 2천명 태우는 빅토리아호에 이미 오천명, 육천명, 칠천명.. 만명.., 더 이상 태울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이미 탔음에도 불구하고, 더 지체하다가는 중공군에 의해 배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출항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순간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결국 만사천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떠났던 그 선장의 심정이 다시오실 그날을 하루 하루 늦추고 계신 우리 주님의 심정을 약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 주님의 심정 때문에 저와 여러분에게까지 구원의 기회가 왔고, 저와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아야 마땅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구원에 거림돌이 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처신을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첫째 흠도 없고 점도 없이, 둘째 불타 없어질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셋째 영혼구원에 집중하며 기다림의 삶을 살기를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 후서 3장입니다. 주님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그분과 그분의 말씀을 오해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에 이미 예수님을 모셨는데도 여전히 어둠이 가득하다면, 내가 기묘자요 모사이신, 원더풀 카운슬러이신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내 지혜와 경험대로 살기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을 돌아볼 일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것은 귀한 일이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주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 분께 내 인생의 왕위를 내어드리세요. 그리고 진정한 성탄절의 축복을 먼저 누려보세요. 그래야 사명의 삶을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0 2017.1.8. “내재하시는 그리스도,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시편 119:11 1 석목사 2017.01.19 6874
259 2017.01.01. "복있는 2017년: 날마다 큐티하는 사람" 시편 1 편 1 석목사 2017.01.04 6883
» 2016.12.25. "나의 기다림, 주님의 기다림" 베드로후서 3:18 1 석목사 2016.12.30 6741
257 2016.12.18. 이기준 목사, "우리는 누구를 기다립니까?" 이사야 9:1~7 1 석목사 2016.12.30 6349
256 2016.12.11. "베드로의 유언(2) 아무한테나 배우지 마라!" 베드로후서 2:1 1 석목사 2016.12.30 5731
255 2016.12.04. “베드로의 유언” 베드로후서 1:12~15 석목사 2016.12.03 6559
254 2016.11.27. “오시는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룻기 1:6 석목사 2016.12.03 6413
253 2016.11.20. “감사의 차원을 한 단계 더....” 로마서 8:28~32 1 석목사 2016.12.03 5618
252 2016.11.13.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사도행전 23:11 1 석목사 2016.11.17 6062
251 2016.11.06. “사도 바울의 마지막 당부” 사도행전 20:17~32 1 석목사 2016.11.13 5855
250 2016.10.30. "안타깝지만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7:30~34 1 석목사 2016.10.31 6359
249 2016.10.23. "애매한 고난: 하나님께서 일하실 기회" 사도행전 16:22~31 1 석목사 2016.10.31 6066
248 2016.10.16. 이기준 목사 "공감하는 침묵: 위로의 시작" 열왕기상 19:3~9 1 호시우행 2016.10.22 6467
247 2016.10.9. “싸우고 난 후가 더 중요합니다.” 사도행전 15:36~41 1 석목사 2016.10.09 6326
246 2016.10.2. "성령님이 이끄시는 교회" 사도행전 13:1~5 1 석목사 2016.10.09 6389
245 2016.9.25.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사도행전 12:!~12 1 석목사 2016.09.26 6352
244 2016.9.18. 이기준 목사 "상처입은 중보자" 예레미야 8:18~22 1 석목사 2016.09.26 6581
243 2016.9.11 "내재하시는 그리스도,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사도행전 11:17~26 1 석목사 2016.09.11 6584
242 2016.9.4.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내리시다." 사도행전 10:34~46 1 석목사 2016.09.11 6504
241 2016.8.28.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님의 역사로” 사도행전 8:25~26 1 석목사 2016.08.30 6706
240 2016.8.21. “그들은 복음을 전했다!!” 사도행전 7:54~8:5 1 석목사 2016.08.30 5936
239 2016.8.14. “다음단계(Next Step)” 사도행전 6:1~7 1 석목사 2016.08.30 6783
238 2016.8.7. “부활하신 주님의 교회” 사도행전 5:27~33,40~42 석목사 2016.08.30 5543
237 2016.7.31. “같은 행동도 때에 따라 무게가 달라집니다.”, 사도행전 5:1~11 1 석목사 2016.08.07 5921
236 2016.7.24. “신약교회의 기도”, 사도행전 4:23~31 1 석목사 2016.08.07 6307
235 2016.7.17. "사도들이 전한 복음" 사도행전 3:1~4:5 1 석목사 2016.07.24 6339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Next
/ 23